1.

항상 1번은 오랜만에-라는 내용을 쓰는듯? 이라는말을 쓰면서 또 오랜만이라는 글을 적는다.

어차피 혼자 흘러가는 공간이라 누군가 지켜보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꾸준히 하겠다! 라고 결심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달 이상 갭을 확인하면 불안하기는 하다. 그래서 텍스트라도 작성.


2.

 온라인에서 내가 구축한 공간에서 지내온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중학교 2학년 첫 기술수업시간에 "이메일 주소 있는사람 손들어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손을 든 친구는 단 한명. 게다가 한명이나 있다는 사실에 선생님은 감명받기까지 하셨다. 전체 2학년 중 단 한명이었다. 당시 PC통신이 더 익숙하던 시절이었고 막 유선인터넷이 도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메일의 개념은 알아도 해본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즈음 처음으로 PC방에 가봤고 같은 해 겨울즈음에는 컴퓨터를 샀다. 물론 인터넷 없이, 가족 공용으로.(당시에는 PC통신도 어마어마한 요금폭탄을 맞기도 했고 유선인터넷도 전용선 도입 이전이어서 모뎀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용한 만큼 요금정산이 되곤했다.) 처음으로 공간을 만들었던것은 다음 카페. 개인홈처럼도 만들고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공간도 만들고. 급격히 발전해서 중3때는 홈페이지를 만들었었다. PC통신에서 고속 인터넷으로 정말 고속으로 변화했던 순간.

 일전에 힐링캠프 박진영 편에서 인상깊게 남은 말이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경험한 축복받은 세대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의미였다. 그 편을 보고 난 뒤로는 자꾸 예전 일들을 생각해본다. 그 보다는 조금 어린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 디지털을 접함에 있어서는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최상이라기보다 모두가 동등했다고나 할까?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이 넘치는 나이, 약간씩 자신이 인지 되어가는 나이에 디지털이 물밀듯 밀려들어왔고 우리는 엔트리플러그에 신지 흡수되듯 디지털을 받아들였다. 초교 5~6학년때는 286컴퓨터가 386,486을 거쳐 586으로 업그레이드 되는것을 보고 감탄하며 줄서서 학교 컴퓨터로 게임을 했는데 중학교때는 인터넷이 되고 컬러컴퓨터가 나왔으니 그저 놀랄 노자였다. (물론 개인차도 발생해 고3때까지 이메일을 만들줄 모르는 친구도 있었다.) 일곱번 돌려 전화를 걸고 밖에서는 공중전화를 찾았으며 토큰을, 회수권을 사용해서 버스를 탔고 TV앞에 가야 채널을 돌릴 수 있었다. 지금은 휴대폰으로 모든일을 할 수 있다. 심지어 TV채널도 돌릴 수 있지. 편하지만 메마르다. 그래서 과도기에 자라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3.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소식, 해외 스타의 귀국 소식 등은 모두 스포츠 신문에서 가장먼저 알 수 있었고 멋진 이미지가 실리면 오려두었다. 새 발매 음반을 확인하려고 매주 한번은 레코드샵에 갔으며 음반을 구입하고 포스터라도 받을라 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름도 생소한 외국가수를 스포츠신문에서 보고 흥미를 가지고 음반점에서 타이틀 이미지와 수록곡의 제목, 운좋게 음반점에서 재생중이라면 그걸 듣고 판단해서 구입했다.(요청하면 틀어주시는 단골 음반점도 더러 있었고.) 고교시절에는 음반을 미리들을 수 있게 플레이어를 비치하는 음반점들이 생겨서 훨씬 수월했다. 내 속의 음악은 9할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생성되어있고 정체되어있다. 음반점에 들를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아이팟에 몇기가, 몇십기가씩 가득 채워다니는 음악은 업데이트가 늦어졌다. 그 부분이 아날로그하게 고장나있다. 고쳐지질 않는 쓸데없는 고집 중 하나.


4.

 참 재미있는게 10년넘게 온라인에 방하나 차려놓고 살다보니 음악은 아날로그를 고집하면서도 글은 컴퓨터로 쓴다. 인터넷이 안되던 시절, 게임하는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에(그때문에 이후 내가 컴퓨터 게임을 오래 못하게 된 것 같다.) 시작한것이 글쓰기였다. 원래도 일기쓰기로부터 다져져 순식간에 엄마를 뛰어넘고 나홀로 취미화 해오던 나는 처음에는 할일이 없자 그저 타자연습을 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저 타자를 두들겼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메모장같은것을 켜고 한글 입력부를 마구 두둘기고는 괜시리 한번씩 힘주어 엔터를 탁 하고 쳤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지도록. 중간중간 스페이스를 툭 튕겨주었고 의미를 몰랐던 컨트롤, 시프트, 알트를 돌아가면서 한번씩 눌러주는것도 잊지않았다.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커리어우먼들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바쁘게 타닥거리는 모습이 멋졌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쓰고싶은 글을 빠르고 멋지게 타이핑하고싶었다.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섭렵하고나서는 책을 펴놓고 무조건 옮겨담았다. 속도가 안정화 되고나서는 마음에 드는 문구를 찾아 기록했고 이후에는 일기를 꾸준히 쓰고 나만의 글도 써봤다. 인터넷이 연결되고는 카페를 만들었다가 남의 공간을 빌려쓰는 기분과 마음대로 꾸밀 수 없어서(당시에는 꾸미는데 훨씬 제약이 많았다.) 답답해하다가 홈페이지라는것을 알게되어 만들어서 일기를 썼다. (그저 컴퓨터를 하고싶어서 붙들고 있다보니 태그도 외워져서 나모에디터 사용전까지는 메모장만 가지고도 홈페이지를 만들고 포토샵도 독학했다. 물론 프로화되진 않았으므로 현시점의 실력은 그저 아마추어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 얻은 지식으로 소스를 읽고 내 필요한 만큼은 수정한다.)

 온라인상의 일기는 중3때부터 대학 다닐때까지 주구장창 썼으니 참 많이 썼다. 특히 고3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귀가하면서 일기의 초안을 머릿속에 그리며 하루를 정리했고 기록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고등학교때는 수행평가를 반드시 인쇄물로 내야했다. 어릴때 대부분 배우는 글쓰는 법은 초교 4학년즈음 엄마의 훈수가 없어도 될만큼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좀 더 어렸을때부터도 글쓰기를 좋아했으며 나름 좋은 평들도 들어왔다. 기초가 되어있으니 쓰고지우고 위치 옮기기가 수월한 컴퓨터로 글쓰기는 식은죽 먹기였다. 게다가 다른친구들에 비해 타이핑 속도도 빨랐으니 숙제하기가 얼마나 쉬웠겠는가. 운이 좋았던것이 학교가 신축건물이여서 당시 법규때문에 무조건 전산실을 만들고 각 학급별 주1회 2시간 전산 수업을 해야했다. 덕분에 또다시 타자연습을 주구장창 할 수 있었고 이미 한글타를 평균 900타로 독학한 나는 허락하에 홀로 영타연습을 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영타도 600평타를 만들었다. 게다가 인문계인데도 엑셀, 파워포인트를 배웠다. 수행평가도 시험도 없는 수업. 딴짓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습관대로 꾸준히 한 덕에 사이트 주소도 잘 외우고 당시에는 굳이 외운것도 아닌데 영자판을 저절로 외우고 다녔다.

 주구장창 해오던 것도 과도기가 생긴다. 홈페이지의 쓸모가, 컴퓨터 할 시간이 줄어들면서 글을 쓸 시간도 자연히 줄어들었다. 홈페이지는 유지만 해두었고 주로 블로그를 썼다. 결국 10년가까이 써오던 홈페이지를 사용하지않기때문에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닫는다는 그 행위만으로도 기분이 안좋았다. 블로그의 개인홈화를 해도 내가 원하는대로 세분화해서 제약을 두던 홈페이지와 다른 체계에게 나를 내놓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사실 홈페이지를 닫는것도 많은 결심이 필요했지만 닫음으로써 나의 일부도 사라진 것 같았다. 그때문일까? 사진에 몇마디 코멘트만 함께하는, 그것도 나열하는 말만 적는 포스팅이 한참을 이어졌다. 이제는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고 점차 더욱 일기를,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를 할 시간은 없지만 조금씩 예전처럼 직접 메모하거나 끊임없이 되내이며 머릿속에 메모한다. 디지털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날로그하려고 애쓴다.


5.

한때는 온갖 버그를 가지고 마구 발매되는 삼성의 휴대폰들을 보면서 "우리가 마루타냐!!"라고 반발한적도 있었고 덕분에 애플빠가 되어 애플에서 휴대폰을 발매해주기만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애플은 휴대폰의 전신으로 아이팟 터치를 보여줬고 경악하며 감탄했었다. 버튼식 흑백(그것도 숫자만 찍히는!!) 휴대폰부터 사용했던 우리는 당시 컬러폰을 사용하고 있었으면서도 대 감격. 그리고 불과 5년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있다. 그것도 마치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인간은 참 대단하다.


6.

제주도에 다녀온지 한달이 되어간다.

다급하게 출발해서 요근래 몇년간의, 앞으로 몇년간의 힐링을 후다닥 꽉꽉 하고온터라 정리는 조급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7.

다행히 이직과 퇴사가 부드럽게 이루어졌다. 다급하게 이루어진 일이라 계획은 모두 무너졌지만 감사하게도 나름 충분히 쉴 수 있었다.

게다가 16, 17일 회사 자체 휴무로 출근 2주만에 바로 내일부터 추석연휴 돌입하여 9일간 연휴를 즐길 수 있게됐다.

기대도 안했던 떡값도 받았다. 그것도 두둑하게! 물론 이미 다 사라져버렸지만ㅠ

13,14,16,17일은 지인들을 만나고 15일에는 아마 미용실. 18-22일은 찬찬히 정리를 하며 온전히 쉴 예정이다.

10월에는 기대감이 증폭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불안초조하면서도 들뜬마음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행복한 불안감!


8.

오랜만에 길고 길게 쓴 글이라 이 포스팅은 아마 많이 수정될 것 같다.

(사실 원래도 포스팅 후에는 한번씩 둘러보면서 많이 수정하는 편이다.)


9.

갑자기 이렇게 글을 쓰고싶어진 계기는 무라카미 하루키 라디오 덕분이다.

작년 9월즈음 생일선물로 뭐 받고싶냐는 물음에 "책!!!"이라고 외쳤다가 독서를 꾸준히 다시 잘 하고싶어 이 책을 찾았다.

간결한것 같아 골랐고 선물 받아 읽었는데 무척이나 글을 쓰고싶게 하는 책이었다. 읽는것도 단숨에 읽었고 마음이 꽉찼다.

에세이랄지 일기랄지 시시콜콜한것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적혀있는데 읽고있노라니 독서하고 싶어지고 글을 쓰고싶어졌다.

아마도 그간 홈페이지에 써오던 일기같은 느낌이 들어서 인것 같다.

시시껄렁한것부터 그날 들은 웃긴 농담을 재해석해서 새 농담을 하고 혼자 웃기도 했고 우스꽝스러운 결심을 하기도 했다.

정말 온갖 감정을 다 쏟아냈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써야지. 그러니까 아이패드나 아이패드 미니랑 블투키보드 사고싶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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